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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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피(雪皮)
강 동수
눈 내린 길을 따라 민속박물관에 갔었다
유리창 너머에 묶여있는 기억들
그 속에 폭설을 지나온 결빙된 신발 한 짝이 누워있다
졸참나무며 눈을 맞은 듯 눈부신 은사시나무 사이를 걸어
외딴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때
동박새 곤줄박이는 신발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제집을 찾아간다
동박새 지나간 자리마다 바람이 걸려 넘어지고
넘어진 바람의 흔적을 지우며 걸었던 신발 한 켤레
이제 바람도 침범치 않는 유리관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붙들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면 도로의 경계선을 지우며
낙하하는 눈
적막한 세상을 걸어가야 할 또 하나의
신발을 찾아나선다
먼 산에서부터 천천히 어둠이 눈을 치우고 있다
- 다음글감자의 이력 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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