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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파커를 위하여-김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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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4회 작성일 21-11-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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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시집 도로시 파커를 위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사유

 

 

 

강동수(시인)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도로시 파커의 묘비명-

 

 

 

 

김경미 시인은 시인보다는 아나운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강릉kbs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재직하면서 오랫동안 영동지역에 이름을 알릴뿐 아니라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 역시 문학회 모임에서 가끔 만나서 익히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그녀의 시를 충실히 읽은 적이 없었던 터에 이번 문학모임에서 시집을 건네받고서야 제대로 시를 정독하였다 김경미 시인은 1992년 등단 후 강원 여성시인회 등에서 활발히 문학 활동을 하며 먹감나무 하나님』『물의 화법등 이미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시인이다 세 번째 출간한 시집을 읽어 내려가면서 즐거웠던 것은 어느 한두 편에 치우치지 않고 시집 전체에 흐르는 시적인 은유와 사유가 깊이가 있어 충분히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특히 난해한 시가 시단에 넘쳐나는 시기에 추상적이지 않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놓은 시어들은 시집 전체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신전을 들인 듯 항아리 안에 집 한 채 짓고

너에게 세를 놓던 여름날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곳 없을 푸른 아이들

몸에서 부려놓고 밤새 뜬 눈으로 뿌리 내리며

아낌없이 곁을 내주는 너의 속내를 보았다

 

물비린내 웃음소리로 수런거리는 빛 좋은 날

자잘하게 숨을 트는 잎맥이 꽤나 정겹다

너를 보면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제는 작아지고 작아진 내 어머니가

알을 품듯 몸 웅크려 세상에 내어놓던

벼랑 같은 묵은 삶을 만난 듯하다

 

꽃가루 자잘하게 향기로 날아오르는 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씩 들여다보며 눈을 맞춘다

어머니 연보라 빛 날개옷이 참 잘 어울리네요

 

우화하는 세상의 모든 꽃들 날개를 편다

그 눈부신 부력

 

-부레옥잠- 전문

 

 

햇살이 따뜻한 여름날 시인은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부레옥잠을 띄운다. 큰 연못이 아니어도 시인의 눈에는 신전이나 다름없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부레옥잠들은 시인이 세놓은 집에 사는 가족들이다 어린 시절 올망졸망 좁은 방에 모여 살던 가족들을 떠올리며 세월의 흐름에 작아지고 작아진 어머니의 모습과 벼랑 같이 힘들던 묵은 삶들이 작은 항아리 속에서 되살아난다. 물위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이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푸른 아이들이 되어 가족의 정겨운 추억이 되어 만나고 어머니의 빈곤했던 삶도 다시 만나는 소소한 일상이 잘 버무려져 있다. 시인의 눈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詩想이 되어 한편의 시가 만들어진다. 추상적인 생각이 시가 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체험적인 시가 읽는 이의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은 항아리가 그냥 항아리가 아니라 집이 되고 우주가 되는 것은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이다

 

 

해질 녘 산길을 서성이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산 어귀에 자잘한 풀꽃처럼 고개를 흔들던 바람은

넓은 들에 뿌리 내린 들풀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남은 햇빛을 나눠주고 있다

 

담장은 허물어지고 담쟁이 넝쿨 무성해진 지

오래된 집에는 느티나무 서너 그루 빈 터에 남아

외로운 낮달을 반기고 있다

 

지붕 없는 하늘에 어스름한 해 그림자 찾아오고

사람들의 자박한 발자국이 남긴 흔적을 따라

새들도 낮은 기침소리를 낸다

 

오래 전

땅을 고르고 축대를 쌓고 집을 지으며 발원하듯

한 장 한 장 쌓아올렸을 사랑과 그리움의 눈물

내 어머니의 마음 같아서 바라보는 눈길이 붉다

 

찾는 사람이 없어도 홀로 빈집을 지키며

돌아올 가족을 위해 밥 한 그릇 정성스레 떠놓던

큰 사랑을 본다

 

가을날 오후 노추산 자락 모정탑 가는 길

나는 꽃을 드리는 마음으로

작은 돌 하나 덮었다

 

-노추산 모정탑길- 전문

 

 

노추산 모정탑은 강릉에 있는 3000여개의 돌탑으로 이어진 길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추산 모정탑에 얽힌 사연을 먼저 알아야 할듯하다

나이 스물셋에 결혼한 후 4남매를 두었던 차옥순 할머니는 아들 둘을 잃고 남편은 정신 질환을 앓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40대 중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할머니는 꿈속에 나타난 산신령으로부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강릉 시내에 살던 할머니는 이때부터 돌탑을 쌓을 장소를 찾아다녔다. 1986년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 계곡에 자리를 잡고, 201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6년 동안 돌탑을 쌓았다 강원도 강릉과 정선에 걸쳐 있는 노추산은 높이 1322m, 태백산맥의 줄기에 속하는 산이다 산속에 위치한 모정탑은 지금은 관광지로 자리 잡아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시를 읽어 내리면 잔잔히 그려지는 풍경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나는 꽃을 드리는 마음으로 /돌 하나를 덮었다 /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따뜻한 감성이 잔잔히 묻어난다. 탑 길을 걸으며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무거운 돌들을 옮기며 한층 한 층 쌓았을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인은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노추산 모정탑길 은 경포습지의 밤』『주문진항 오징어 배와 더불어 시집에 실린 몇 안 되는 지역을 거론한 시에 속한다. 아무튼 시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부지런히 사랑하며 시의 영감을 얻기도 하며 아름다운 시어로 표출해낸다. 지역의 명소를 노래하는 시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지만 반대로 시인들이 그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시로 표현하므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망연히 손을 놓는다

반으로 접힌 채

복병처럼 나타난 사진 한 장

 

그 속에서 당신은 환히 웃고 있다

마음에 단단한 매듭을 지었다 자신했는데

훌훌 그만 보냈다 생각했는데

바보처럼 아직도 그대를 잊지 못한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던 미련들이

이렇게 때때로

고개를 불쑥불쑥 들이미는 퍽퍽함에

무릎을 꿇고 마는 나약한 이기

 

서른일곱 살의 강건한 아버지는

여전히 청년의 모습으로

불혹을 훌쩍 넘긴 딸을 보며 웃으신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항변할 새도 없이

손톱 밑 가시처럼 아리게 박히는 그리움

 

잊는다는 건 마지막 형벌이다

 

-사진- 전문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일이다. 오랜만에 서랍을 정리하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잊고 있던 물건들이 나타난다. 그것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젊은 날의 아버지 사진이기에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지웠다 생각했는데 자신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항변하고 싶은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살아있는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보고픈 그리움이다 세월이 흘러 오래될수록 그리움은 깊어지는 법이니까....이 시의 백미(白眉)/잊는다는 건 마지막 형벌이다/ 라는 마지막 행이다

 

 

 

나 어릴 적 연탄불 꺼뜨리고

연탄부지깽이로 죽어라 맞은 적 있었네

엄동설한 구들장 열기를 지키는 연탄아궁이

시간 맞춰 헌 탄 새 탄 갈아야 하는데

새 탄 위에 거꾸로 헌 탄 올려놓고

가난에 무심했던 어린 치기稚氣

다 큰 것이 연탄불도 갈 줄 모르냐며

저런 것을 밥 먹여 키웠다며

궁핍에 약이 받혀 모질고 독했던

어머니의 손 맛

 

오늘 신문에 전국구 모 시인이 나왔네

월세 살던 집 비워 달라 하는 까닭에

호텔방 하나 달라 편지를 썼다하네

생활보호대상자 기초연금 받는다는 전업 작가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한 52쇄 출판시인

도로시 파커의 방을 꿈꾸는 그녀는

연탄불 갈아 본적 있었을까

가위인 듯 가위가 아닌 몸집 큰 연탄 부지깽이

그 둔탁한 파열음을 경험해 본 적 있었을까

 

삶이 퍽퍽해 연탄도 없이 살다가 병이 들어

餓死한 젊디젊은 시나리오 작가를 생각하네

그녀는 왜 유명 프렌차이즈 음식점에

유명 대학병원에 편지를 쓰지 못했을까

다 큰 것이 제 앞가림도 못했냐며

글쓰기로 먹고사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냐며

독하고 모질게 부지깽이 흔들어 댈

또 다른 어머니들 울음소리 낭자한

또 다른 이 땅의 도로시 파커를 위하여

 

- 도로시 파커를 위하여- 전문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이 시에는 세 사람의 글 쓰는 이가 등장한다. 첫째는 어릴 적 연탄불을 갈며 가난하게 생을 살았던 시인 자신이며 두 번째는 전업 작가이며 한때 베스트셀러 시집을 출간하기도 한 여류시인이다 최근에는 괴물이라는 시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한 노시인을 곤경에 빠뜨린 일화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는 단칸방에서 굶어죽은 젊은 시나리오 작가이다 여기에 시인은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822- 196767)라는 미국의 여류 시인을 등장시킴으로서 시의 극적인 재미를 배가 시킨다 도로시 파커 또한 여성이라는 공통점과 시인이며 시나리오 작가이기에 이 시에서 언급된 사람들과 동일선사에서 비교가 된다. 시에 등장하는 여류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내 로망이 도로시 파커처럼 호텔에서 살다 죽는 것이라며, 홍대 앞 호텔이 1년간 방을 준다면 평생 홍보대사를 하겠다고 썼다. 이후 갑질논란에 휘말려 공짜로 방 달라고 한 게 아니다라는 해명을 해야 했다. 김경미 시인은 가난한 어린 시절 연탄불을 꺼뜨려 어머니에게 매를 맞던 기억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도로시 파커. 그리고 작가의 자존심에 쌀을 빌리지 않고 끝내 글을 쓰다 굶어죽은 시나리오 작가. 호텔방을 당당히 내어달라는 여류시인과 평생을 호텔에서 생활한 도로시 파커를 대비시킴으로 작가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연탄이라는 것이 자신의 몸을 태워 남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희생 없이 당당한 여류작가를 향해 연탄불 갈아 본적 있었을까/ 가위인 듯 가위가 아닌 몸집 큰 연탄 부지깽이/ 그 둔탁한 파열음을 경험해 본 적 있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여류작가는 호텔에서 글을 쓰고 오늘날 전업 작가는 호텔에서 글을 쓰는 꿈을 꾼다. 아직도 글을 쓰는 일은 배고픈 일이며 전업으로 글을 쓰고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餓死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하여 그녀는 왜 유명 프렌차이즈 음식점에/ 유명 대학병원에 편지를 쓰지 못했을까라는 안타까움 마음도 함께 전하고 있다 세 번째 시집 도로시 파커를 위하여이후의 더 멋진 詩作活動을 기대하며 김경미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이 녹아있는 시 한편을 감상해보자

 

 

집 잃은 고양이의 삐걱거리는 발소리를 듣는다

차마 근성을 버리지 못한 측은지심이 어둠을 흔들고

귀를 열었다 둥글게 만 척추 사이로 두눈을 부라

리며 구멍 숭숭한 차양 밖 가로등을 향해 발톱을

세우는 너를 본다.

 

오랫동안 길 위에 부린 삶의 무게가 온 몸에 부스

럼을 만들고 울음소리에 익숙했던 고통스러운 기억

들은 자꾸만 쭈그러들었다

 

홀로 견디며 밤새도록 시들어가는 너는 나와 참 많이

닮았구나. 마음마저 늙어가는 애틋한 감정 추스르며

흔적은 남기 마련이라 애써 항변하는 나를 처연한

눈빛으로 흔들지 마라. 금줄 그어대며 살던 화려한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심해로 가라앉는 어둠 속에 망망茫茫 부표인 척

떠돌던 너와 내가 일상의 뒤축을 치열하게 끌어당기며

목이 쉬도록 시간을 깨울 일이다. 하지만 새벽은 너를

쉬이 초대하지 않는구나. 미처 끝내지 못한

소소한 욕망을 들킨 것이냐?

 

나는 그만 심장을 부여잡고 너의 혈맥 속으로 침잠

한다

 

-간헐적인 이기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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